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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 속에 되새기는 믿음의 자세
  • 이상섭 기자
  • 등록 2026-02-12 09: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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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론타임즈=이상섭]


서종원 목사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두 번 울리는 나라, 대한민국. 매년 이맘때면 우리는 ‘신정’과 ‘구정’이라는 묘한 시간의 경계 위에 서게 된다. 필자의 기억 속에서 이 이중적인 시간의 흐름은 단순한 달력의 문제를 넘어,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신앙적 정체성이 충돌하던 복잡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부르는 ‘설 연휴’ 뒤에 숨은 ‘이중과세(二重過歲)’의 기억을 통해 기독교적인 시간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과세’는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아니라. 설을 쇠고 새해를 보낸다는 의미의 ‘과세(過歲)’다. 


   1970년대, 우리 사회는 근대화의 기치 아래 생활 양식 전반의 효율성을 강조하며 신정(新正)을 공식적인 신년으로 정착시키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전래의 음력설 쇠기는 지양해야 할 구습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차례나 제사라는 전통과 무관하게 성장한 필자에게도, 당시 신정 일원화를 지향하던 사회적 분위기와 그 속에서 암암리에 지켜져 온 민속 문화 간의 긴장감은 꽤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80년대 들어 정권이 바뀌자,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지정하며 제도권 안으로 포섭하였고, 이에 따라 사회적 분위기는 또 한 번 변화하였다. 일부에서는 두 번의 설을 쇠는 것을 ‘이중과세’라 칭하며 사회적 낭비라는 이유를 들어 비판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필자는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주일과 구정 연휴가 겹치는 경우에 예배 출석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음력을 중심으로 지켜지는 민속 명절의 관습과 이에 배치되는 기독교적인 시간의 사이클을 서로 어떻게 통전하여야 할지 자문하기도 하였고, 그 와중에도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지키는 길이 무엇일지 고민하곤 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또 다른 성찰을 요구한다. 비기독교인들조차 차례 대신 해외여행을 택하는 등 유교적 전통에 기반한 고래의 결속력은 약화하는 중이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적 시간관과 우리 민속 전통 간의 긴장을 넘어, 더 넓은 의미의 ‘화해와 관용’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새해의 시작’은 역사적 시대와 지리적 문화권에 따라 다양하다. 서구 기독교 전통에서도 그레고리우스력의 1월 1일만이 유일한 시작은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인류 구원의 새로운 전환이 이루어진 ‘부활주일’을 한 해의 진정한 시작으로 여겼던 전통이 그 예다. 동아시아의 사례에서도 비슷한 측면을 찾아볼 수 있다. 음력 1월 1일인 원단(元旦)뿐 아니라, 해마다 양력 2월 초에 찾아오는 입춘(立春)을 기준으로 간지(干支)가 바뀌며 새로운 해가 열린다고 본다. 역사적·문화적으로 한 해의 시작을 대하는 인류의 시각은 이토록 다양하고 풍성하다.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와 1월 1일 0시 0분 1초를 가르는 절대적이고 명확한 기준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거시적인 한 해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날마다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이다. 시간은 하나님께 속한 창조물이며, 우리는 그 시간을 위탁받은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라고 노래한다. 이 고백은 어떤 날을 명절로 지키느냐 하는 논쟁을 넘어, 지나온 날을 돌아보고, 남은 날의 무게를 헤아리는 가운데. 하루하루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담고 있다. 2026년 새해의 두 번째 시작을 맞이하는 이 시기에 ‘이중과세’에 대한 복잡다단한 상념을 넘어 우리에게 귀한 선물로 주어진 하루하루를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살아내는 지혜가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서종원 목사

감리교 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정론타임즈=이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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