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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예배당 위에 세운 자유의 신앙”
  • 편집국 기자
  • 등록 2026-03-02 20:47:07
  • 수정 2026-03-02 21: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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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제암교회서 3·1절 107주년 기념예배


[정론타임즈=이상섭]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서인석 감독)는 3월 1일 오후 3시, 제암교회(담임 최용 목사)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3·1절 107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고, 신앙 안에서 지켜온 자유와 역사의식을 다시금 일깨우는 시간을 가졌다.

태극 문양이 선명히 새겨진 기념 순서지와 함께 시작된 이날 예배는 애국가 제창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독립선언문 낭독, 3·1절 노래 제창 등으로 이어지며 107년 전 그날의 외침을 오늘의 신앙 고백으로 되살렸다.


     3.1운동순국기념탑

     3.1운동순국유적소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서인석 감독 설교 요약

서인석 감독은 요한복음 8장 32절 말씀을 본문으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서 감독은 먼저 “오늘날 국경일에 대한 무관심은 단순한 기념일의 소홀함이 아니라 역사의식의 약화”라고 진단하며,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결국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을 인용해 “문화를 지키지 않는 민족은 결국 사라진다”며, 언어와 문화, 그리고 신앙의 뿌리를 지키는 일이 곧 민족 생존의 문제임을 역설했다.

특히 그는 3·1절을 “국가의 존엄을 세운 날”이라 규정하며, 그 중심에 ‘말씀’이 있었다고 밝혔다. “선조들의 독립운동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자유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진리에서 비롯된 신앙의 열매였다”는 것이다.

서 감독은 제암교회 사건을 언급하며 이렇게 물었다.

“107년 전 이곳에서 순진한 교인들이 통곡하며 외쳤던 그 신앙의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신앙을 지키는가? 침묵으로 진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는 “자유가 사라지면 인간은 폐쇄된 삶을 살게 된다. 죄에 묶인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니다”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야말로 인간을 참 자유로 인도한다고 선포했다.

제암교회는 불탔지만 복음은 불타지 않았다”는 선언은 예배당을 숙연케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신앙의 자유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사명”이라며, 3·1정신의 계승은 기억이 아니라 실천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예배설교 서인석감독

     사회 김주선목사(화성지방감리사)

     기도 김종은장로(평신도사업위원장)

     봉헌기도 강범석목사(안산남지방회 감리사)

     독립선언서 낭독 김순주목사


“이 교회가 세워진 이유는 글을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 강신범 원로목사의 역사 증언

이날 예배에는 제암교회 제31대 담임을 역임한 강신범 원로목사(86세)가 참석해 역사적 증언을 전했다. 1980년 부임해 제암교회의 역사 복원과 순교자 유해 발굴, 기념탑 건립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산 증인이다.

강 목사는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회고했다.

제암교회가 세워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한글을 배울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이 글을 배우기 위해 교회로 모였고, 그곳에서 신앙과 민족의식이 함께 자랐습니다.

그가 1919년 4월 제암리 사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전할 때에는 참석자 모두 숙연하게 경청하였다. 일본 헌병은 다윗과 골리앗의 설교조차 금지하며 교회를 감시했고, 결국 1919년 4월 15일 교회로 모이게한 남자 21명을 교회문을 봉쇄하고 불을 질러 학살하였다. 교회 밖에서는 부인 두 명이 희생되었고, 마을 전체가 불태워졌다.

특히 결혼 한달된 19세 새댁의 순교 장면을 전할 때는 모두가 숨을 죽였다. 남편을 생각하며 울고 있던 그녀에게 일본 헌병은 “왜 우느냐”고 다그쳤고, 사실대로 답한 그녀의 머리를 움켜잡고 칼로 목을 내리쳤다는 증언은 107년 전의 비극을 현재로 끌어왔다.

강 목사는 또 마지막 생존 증인이었던 전동례 할머니가 1992년 96세로 별세하기까지 역사의 산 증인이었음을 전하며, 강 목사는 생존자의 증언을 기초로 1982년 유해 발굴을 문화재관리국에 건의했고, 그 해 9월 발굴이 이루어졌고 제암리 사건 현장은 정부 문화재 제299호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제암교회는 2001년 봉헌된 다섯 번째 교회이다.

“일본에서도 저를 여러 차례 불러 역사를 들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 죄악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오늘의 과제였다.


     최용 목사(제암교회 담임)

     제암교회 강신범 원로목사

     독립선언서 낭독

     증언 강신범 원로목사

     광고 이길복 연회총무

     축도 김상종목사(안양지방회감리사)


3·1정신, 기억을 넘어 계승으로

예배는 독립선언문 낭독과 만세삼창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외친 “대한독립 만세”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다짐하는 자유의 선언이었다.

제암교회는 단순한 역사 현장이 아니다. 말씀을 배우기 위해 모였던 청년들의 배움터였고, 다윗과 골리앗을 설교하지 못하게 했던 억압의 현장이었으며, 그러나 끝내 복음이 꺼지지 않았던 신앙의 자리다.

불타버린 예배당 위에 세워진 다섯 번째 교회는 오늘도 묻고 있다.

“너희는 무엇을 위해 신앙을 지키는가.”

3·1운동 107주년을 맞은 이날, 경기연회는 자유를 단지 역사적 사건으로 기념하지 않았다. 진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다음 세대에 전하겠다는 신앙적 결단으로 응답했다.

불은 건물을 태웠으나 복음은 태우지 못했다.

그리고 그 복음 위에 세워진 자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선교회 임원찬양

     제암교회 전경




       (정론타임즈=이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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